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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놀드의 인생 1

트레이닝 웹진 2008/02/10 14:22 |


아놀드 인생 60년
영화 같은 삶
글: 조 부벤, 피터 맥고흐
사진: 로버트 리프(2007년)

"진실은 허구보다 강하다. 허구는 있음 직한 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실은 실제 일어난 일이다."-마크 트웨인-

아놀드 슈워제너거를 주시하라. 작은 오스트리아 마을에서 가난하게 자란 아놀드가 지금
껏 해온 모든 일을. 아놀드가 보유한 모든 보디빌딩 타이틀, 주연한 모든 영화, 수백만 달러의 재산, 주지사로서의 정치적 위치. 영향력 있는 국가적 인물임에 틀림없다. 아놀드는 2008년 대선에 출마할 예정이다. 지금 독자 앞에 앉아 있는 굉장한 인물은 전대미문의 전설이면서도 가장 있음 직한 우상이다. 아마도 이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일 것이다.하지만 아놀드를 제대로 알자면 영화의 눈'으로 봐야 한다. 보통 평범한 눈으로는 볼 수가 없다. 아니 무엇을보고 있는지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말도 안돼', 사실 아놀드의 삶 자체가 영화 같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영화나 판타지 속에서나 일어날 법한 삶이다. 영화의 눈'으로 보면, 비록 단2시간 일지라도 아마도 있음 직한 일이라고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놀드의 이야기를 있음 직한 일로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방법이다. 사실, 아놀드도 같은 생각을 한다. 믿기 어려울 정도로 놀라운 자신의 인생 여정에 대해 얘기하던 중 아놀드는 말한다
"요즘도 과거를 회상하며 혼자 중얼거린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지, 현실 같지 않다.'
"자, 이제부터 영화 대본에나 나올법한 사건들이 펼쳐진다. 편안히 앉아 영화를 감상해 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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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막

장면 I

1992년 여름. 오스트리아,그라츠.14살의 아놀드 슈워제너거는 난생 처음으로 체육관에 들어선다. 장소는 고문실이나 지하감옥처럼 매우 원시적이다. 웨이트리프터들이 클린, 저크, 프레스, 스쿼트를 하고 있다. 사람들의 흥얼거리는 조용한 대화소리. 때로는 스쿼트나 스내치중간에 괴성을 지르는 이도 있다. 이외에 잡담 같은 것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체육관 벽은 분필로 쓴 글로 가득하다. 가령, 벽 한 구석에 '클린과 저크 20세트'라고 쓰여있다. 그 아래 하얀 분필로 총 몇 세트를했는지 선이 그어져 있다. 다른 머신이 있는 벽쪽에는 다른 색깔 분필로 쓰여져 있다. 모두 오래된 훈련일지 같아 보인다. 45년 뒤, 이 분필선들은 그 어떤 것보다.깊게 아놀드 슈워제너거의 마음 속에 남아있다.당연하다 어쨌든 아놀드의 이야기는 분필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즉, 목표 설정, 계획 짜기, 성공적으로 계획 실행하기로 귀결된다. 그 다음엔 더 높은 목표를 세워 계획하고 실행한다. 불가능한 목표란 없다.너무 원대해 아놀드가 성취할 수 없는 목표란 없다.체중 67.5㎏짜리 14살 소년이 세계 최고의 보디빌더가 되는 것이든, 미국에서 영화 배우가 되는 것이든 목표가 무엇인지는 중요치 않다. 벽에 분필로 적어 놓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아놀드는 "목표를 적어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러면 1~2시간 안에 현실이 된다. 벽에 18개 선을 그었다. 20세트 달성이 눈 앞에 있다. 하지만 힘이 딸리고 정말 목표만큼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래도 나머지 2세트를 마저 하는 게 낫다. 내가 보디빌딩에서 배운 한가지다. 목표를 세우면 실천하기가 더 쉽다. 목표를 종이에 적고 모든 사람들에게 말해 공식적으로 약속을 한다.이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망신당하기 십상이다."라고 말한다.아놀드는 1947년 7월 30일 오스트리아 탈, 인구 1,200명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아놀드의 아버지는 장신에 탄탄한 몸을 지닌 아이스 컬링 챔피언이었다. 또한 그라츠(탈에서 4마일 떨어진 지역) 지역의 경찰청장으로 일했다. 형 메인하드는 아놀드 보다도 더 '타고난 몸'을 지녔지만 아놀드만큼 열의가 없었다(형은 1971년 끔찍한 차 사고로 사망했다).어린 시절 아놀드는 아버지의 격려를 받으며 여러 스포츠에 심취해 있었다. 특히 축구에 빠져있었지만, 아이스 컬링, 달리기, 수영, 복싱, 투창, 투포환등 못하는게 없었다. 뒤에 열거된 운동에서 알 수 있듯이 아놀드는 혼자서 경기하고 혼자서 상을 받는 '혼자서 하는 스포츠'를 좋아했다.

15살이 되기 직전 1962년 겨울, 아놀드는 보디빌딩을 할 경우 축구에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아놀드는 즉각 보디빌딩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180㎝에 고작 67.5㎏로 마르긴 했지만 아놀드는 나이에 비해 운동을 잘했고 근육질이었다. 체육관에 나이 든 어른들은 일찍이 잠재성을 알아보고 아놀드를 늘 감쌌다.얼마 지나지 않아 아놀드는 웨이트리프팅에 중독됐고 다른 모든 스포츠를 그만뒀다. 일주일에 3번, 밤마다 집에서 6마일 이나 떨어져 있는 그라츠 체육관을 찾았다.때론 걸어서, 때론 자전거로 체육관까지 가야 했다. 체력 증진은 물론 특히 다리와 폐 단련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전혀 개의치 않았다. 체육관은 그라츠 축구경기장 내에 있었고 주말은 축구경기로 문을 열지 않았다. 아놀드와 훈련 파트너들은 유리창을 깨고 체육관에 들어갔다. 다른 날은 대충 필요한 기본장비로 집에다 직접 만든 체육관에서 훈련을 했다.물론 집 체육관은 난방이 되지 않았다. 오스트리아의 한겨울, 아놀드는 종종 영하의 온도에서 훈련했다. 그라츠 체육관도 전체 공간에 낡은 히터 하나뿐이어서 춥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놀드는 지금도 그 시절 훈련 중, 손이 '치닝 바'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던 것을 기억한다.실내가 추워 장비도 꽝꽝얼어 있었기 때문에 손에서바를 떼어낼때는 살이 떨어져 나가는 듯 했다.

아놀드 연대기

1907년 1922년 1945년 
8월 1일
아버지 구스타프 출생 7월 29일
어머니 아우렐리아 출생 10월 20일
부모님 오스트리아 스티리아에서 결혼

1946년 1947년 1953년
7월 17일
형 메인하드 출생 7월 30일
아놀드 오스트리아 탈에서 출생 탈 지역의 '한스 그로스'학교 입학

1955년 1962년 1964년
11월 6일
아놀드의 반려자, 마리아 쉬라이버 출생 2월
아이스 컬링 대회 6위

7월
14살 아놀드, '그라츠 운동연합장' 쿠르트 마르눌을 만나다
구라츠에서 목공소 견습생으로 일하다

2월
아이스 컬링 시대회, 전국대회 주니어부 우승

4월 26일
미스터 오스트리아, 미스터 헤르큘레스 3위, 미스터 슈타이어마르크 4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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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Ⅱ

1962년 늦은 여름. 아놀드는 또 벽을 쳐다보고 있다. 이번에는 그라츠에 있는 한 영화관 벽이다. '헤라클레스 VS. 뱀파이어'를 보는 중이다. 여기에 '레그 파크'가 등장한다. 아놀드가 '근육잡지'에서 본 존경하는 인물이다. 레그는 울퉁불퉁 근육질에 힘이 넘치고 거친 사람이었다. 영화배우로 전향한 유명한 보디빌더인 스티브 리브스와는 차원이 다르다. 스티브는 세련되고 고상한 타입으로 아놀드의 취향은 아니었다. 벽에는 또 다른 목표가 적혀있다. 제 2의 레그 파크가 되는 것. 아놀드는 점점 이 남자에 중독됐다.아놀드는 '근육잡지'를 통해 레그에 관한 모든 것을 알아냈다(어떻게 먹고 어떻게 훈련하지).
구할 수 있는 모든 사진을 연구했고 레그에 관한 모든 '독문' 기사를 읽었다. 친구의 도움을 얻어 '영문' 기사까지도 읽었다.체육관에서 같이 훈련하던 사람들은 아놀드에게 아마도 10년 내 레그처럼 될 수 있을 거라 말했다. 아놀드는 더 빨리 레그처럼 되고 싶었고 훈련에 더 열을 올렸다. 일주일에 6일씩 훈련을 했고 어느 때는 하루에 여러 번 훈련하기도 했다.훈련에 또 훈련했고 늘 새로운 목표를 설정했다.
아놀드는 단지 '제 2의 레그 파크'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유럽 최고의 보디빌더 나가서는 세계 최고의 보디빌더가 될 것이다. 그리곤 미국으로 건너가서 레그처럼 '무비 스타'가 될 것이다. 목표는 정해졌다.그럼 어떻게? 그 시절에는 오스트리아에서 미국까지 여행하는게 흔한 일이 아니었다. 비용을 감당할 수 있는 사람도 없었다. 아놀드는 "내 목표는 또 다른 '레그 파크'가 되는 것이었다.당시 어떻게 해야 되는지 전혀 몰랐지만 꼭 해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다. 오스트리아를 떠나 미국으로 가겠다고 늘 생각했다. 한 10살 때부터 이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냥 길이 없는 것처럼만 보였다."고 말한다.미국으로 건너가는 것, 영화 배우가 돼 유명해지는 것. 전혀 길이 안보였다. 모두 보디빌딩 때문이었다.당시 보디빌딩은 거부감이 큰 운동이었다.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고 친구들조차 이상한 데다 시간을 투자한다고 생각했다.하지만 아놀드는 단순히 대중적인 것을 하기보다는 자신이 선구자, 개척자가 되고 싶었다.다른 애들처럼 소방관, 형사, 항해사가 되기는 싫었다.
같은 맥락에서 그냥 평범한 또 한 명의 보디빌더는 되기 싫었다.아놀드는 "내 꿈과 의욕은 전혀 평범하지 않았다. 보통 사람이라면 평범함 삶에 만족할 수 있다. 난 달랐다. 인생에는 평범한 삶만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위대한 사람이나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늘 감명을 받곤 했다. 시저, 샤를마뉴 대제, 나폴레옹,내가 기억하는 이름들이다.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었고 최고로 유명해지고 싶었다.
보디빌딩이 그 수단이 될 거라 생각했고 모든 정력을 보디빌딩에 쏟았다."라고 말한다.
 
장면Ⅲ
1965년 10월. 한 밤중 군대 막사 벽을 뚫어지게 응시하고 있는 아놀드.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에 빠져있다. 명령을 따라 기지에 남아야 할지, 몰래 막사를 빠져 나가야 할지. 독일 보디빌딩 대회에 나가 꼭 우승하고 싶다. 마침내 결정을 내린다. 떠나기로. 여분의 옷가지 등가방을 쌀 틈도 없이 곧바로 일어나 벽을 기어올라 막사 밖으로 나간다.가까스로 3등급 기차표를 살 정도의 돈을 날치기 했다. 기차는 정거장마다 멈춰 섰고 하루 뒤 슈투트가르트에 도착한다. 그라츠의 허름한 체육관을 처음 방문하고, 영화에서 레그 파크를 처음 본 이후 지난 3년간 아놀드는 그 어느 때 보다도 열심히 훈련했다. 18살이 된 아놀드는 오스트리아 군대에 입대했다.운 좋게도 그라츠 근처 부대에 배치돼 탱크 운전수로 복무했다. 아놀드는 "군대에서 생활은 일종의 사치였다. 그 전에는 일주일에 한번 정도 고기를 먹었는데 입대한 후 매일 고기를 먹을 수 있었다.
실수를 저지르면 주방에 보내 감자껍질 벗기기 등 밤새 식사준비를 하도록 했다.내겐 전혀 벌이 아니었다. 원하는 걸 맘껏 먹을 수 있는 완벽한 상화이었다.항상 고기가 남아돌았고 달걀도 있었다 훈련을 먼저 하고 2시간 동안 내가 맡은 일을 했다. 그리고 나서 먹었다. 그 시절 체중을 많이 불렸다.
(90㎏에서 101.3㎏으로 늘었다).매일 열심히 훈련도 받고 달기기를 했다. 그래도 체중을 늘릴 필요가 있었다.좋은 시절이었다."라고 말한다.


아놀드 연대기
1965년 1996년   
미스터 슈타이어마르크 우승
10월 1일
오스티리아 군대 입대, 1년간 탱크 운전수로 복무 8월 1일
아놀드 뮌헨의 '푸취게르' 짐에서 훈련을 시작, 이듬해 체육관을 사들임

9월 24일
런던에서 열린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 아마추어 장신 2위 9월 29일
영국잡지 '헬쓰&스트랭쓰'에 처음으로 기시가 실림
"20살짜리 오스트리아선수가 미스터유니버스 대회 유럽본선수준을 한단계 높여 놓았다." 
 
장면 Ⅳ
1966년 초. 아놀드,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시작하다. 현재 독일 뮌헨에서 살고있다. 미스터 유럽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바로 군대를 제대하고 이곳으로 옮겨왔다. 일류 보디빌더들과 한 체육관에서 함께 훈련한다. 개인 트레이너로 일 한지 단 2주만에 체육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오스트리아를 떠나 여기까지 어렵게 모험을 해온 아놀드는 뭐든 빠른 속도로 배워 나간다. 스페인어, 터키어, 영어 등 뮌헨과 체육관에서 쓰이는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데는 그다지 빠르지 못했지만. 어쨌든 아놀드는 빠르게 습득하는 사람이다. 어떻게 훈련하는지, 어떻게 챔피언 보디빌더가 되는지에 관해서는. 이제 미스터 유니버스가 되기 위해 훈련하고 있다.  아놀드 슈워제너거의 성공은 상당 부분 용맹성에 기인한 사회성 덕분이다. 특히 사람들은 항상 아놀드에게 끌렸고 돕기를 원했다. 아놀드가 애당초 뮌헨으로 옮겨간 이유기도 하다. 슈투트가르트에 머무르는 동안 아놀드는 알버트 부세크를 만났다. 당시 알버트는 '스포츠 레뷔' 잡지의 편집인이자 공동 창간자로서 독일 보디빌딩계에서 상당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머지 않아 1966년 독일 보디빌딩 협회를 창설했다(알버트는 오늘날까지도 뮌헨에서 사진작가로 일하며 보디빌딩계에 종사하고 있으며 아놀드와 절친한 친구 사이다.알버트는 '2005 캘리포니아 아이언맨 프로 인비테셔널' 사진을 훌륭하게 담아내 'Artie Zeller'상을 받았다). 아놀드의 몸과 카리스마에 깊은 인상을 받은 알버트는 아놀드에게 뮌헨으로 와 체육관에서 일할 것을 권유했다."슈투르카르트에서 대회가 끝난 후 나는 아놀드를 식당으로 데려갔다.내가 본 중 최고의 잠재력을 지닌 인물임을직감적으로 알았다. 우리는 함께 얘기를 나눴고 아놀드의 성격과 유머감각에 큰 감명을 받았다. 성공에 대한 갈증이 대단했다. 내 평생 그런 대단한 의욕을 지닌 사람을 만난 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내게 앞으로 계속 보디빌딩을 할 것이라고 했다. 자기 꿈이 미국으로 가 세계최고의 보디빌더와 무비 스타'가 되는 것이라 했다." 며 알버트는 18살 아놀드를 처음 만났던 때를 회상했다.실제로 슈투르가르트 대회(미스터 유럽 주니어 대회)를 참가한 것은 여러 모로 아놀드에게 좋은 일이 됐다. 상식을 벗어난 모험으로서가 아니라 아놀드 개인적으로 프랑코 콜럼부를 만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콜럼부는 같은 지역에서 열린 유럽 파워리프팅 대회 라이트급에 출전 중이었다. 사르디니아공국 출신인 콜럼부 역시 지금 뮌헨에 살고 있다.


1966년 1967년  
0월 9일
독일 쾰른에서 열린 '베스트 빌트 애쓰리트 오브 유럽' 우승

10월 30일
슈투르가르트에서 열린 '베스트 빌트 애쓰리트 오브 유럽' 헤비급 파워리프팅 우승
(콜럼부는 미들급 우승) 1월 28일
미스터 런던 대회에서 바벨 컬링 시연을 하며 117㎏을 들어올림

3월 2일/16일
'헬쓰&스트랭쓰' 잡지의 표지모델이 됨 4월 4일
독일 파워리프팅 대회 2위

9월 23일
런던에서 열린 NABBA 미스터 유니버스 아마추어 대회 우승
(장신, 종합우승을 하며 최연소 미스터 유니버스가 됨)
 
1967 1968년  
10월 26일/11월 9일
'헬쓰&스트랭쓰' 잡지 표지 모델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레그 파크와 크리스마스를 보냄 2월 2일
조카 패트릭 탄생

9월 21일
런던에서 열린 NABBA 프로 유니버스 우승 9월 27일
IFBB 미스터 유니버스 조 웨이더 초청으로 미국 캘리포니아 마이애미 도착
(다음날 둘은 처음 만났다)

9월 28일
IFBB 미스터 유니버스 장신부문 우승, 종합우승은 프랭크 제인에게 내주었다
 
 
뮌헨으로 돌아온 아놀드는 더 열심히 훈련하기 시작했다.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서의 패배를 앙갚음 하겠다는 결의를 다졌다.이듬해 여름 20살이 된 아놀드는 체중이108~112.5㎏에 달했다.60년대 후반, 그 시절의 보디빌더로서는 사실상 굉장한 체중이었다. 게다가 더 날씬해졌고 근육도더 또렷해졌다. 작년 런던대회에서 목표했던 대로.아놀드는 좀 더 완벽한 보디빌더가 되기 위해 포즈 기술을 연마했다.이번엔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의 심사위원으로 영국 보디빌딩계의 '산파역할'을 하던 왝 베넷의 도움을 받았다. 베넷은 아놀드를 영국에서 열리는 보디빌딩 시범경기에 초청했고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포즈 훈련을 시겼다. 아놀드는 처음으로 음악에 맞춰 포즈를 취했다. 아놀드는 베넷에게 포즈 교육을 받던 때를 다음과 같이 회상한다. "아놀드, 포즈 취할때 어떤 음악을 트는가?,레그 파크는 '레전드 오브 더 클래스 마운틴'에 맞춰 포즈를 취하는데. (베넷이 물었다) 나는 '음악을 틀지 않습니다. 어떤 음악을 선곡해야 할지 잘 몰라서요.'라고 답했다. 베넷은 '같이 음악을 골라보자, 시범경기에선 꼭 음악을 사용해야 한다.'라고 말했다."베넷이 선택한 음악은 영화 '엑소더스'의 삽입곡이었다. 처음에 아놀드는 음악에 맞춰 포즈를 취하는 게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리듬과 조화를 이루며 포즈를 취했다. 런던 시범경기에서 박수갈채를 받은 후 아놀드는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감이 넘쳤다. 1967년 9월 미스터 유니버스 아마추어 대회가 다시 다가왔고 아놀드는 이미 우승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아놀드가 옳았다. 쟁쟁한 경쟁자로 막 미스터 아메리카 대회에서 우승한 데니스 티네리노 그리고 쳇 요튼이 이번 대회에 참가하지 않은 것이다. 결과는 1년 전 예측한 그대로 였다.군살 없는 몸매, 갈라지는 근육, 새로운 포즈로 무장한 아놀드는 확실한 승자였다. 아놀드는 최연소 미스터 유니버스가 됐다.
사방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고 팬들은 열광했다. 아놀드는 몇 번이고 혼자 중얼거렸다. '1967년 미스터 유니버스 아놀드 슈워제네거.'아놀드는 알버트, 베넷, 비행기에서 운 좋게 만났던 두 명의 독일인 사업가 등 도움을 받은 여러 사람들에 대한얘기를 늘어 놓았다. "내가 많은 사람에게 얻은 도움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너무나 간절히 챔피언이 되길 원하는 나를 신실한 사람으로 봐주었던 것 같다. 나를 도와준 모든 분께 감사 드린다. 나를 도와주고 나와 함께한 사람들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감사할 따름이다."
 
장면 Ⅴ

1967년 12월. 남아프리카공화국 새벽 4시 30분. 아놀드는 잠에 취해있다.레그 파크: 이봐, 아놀드, 훈련해야지.아놀드: 뭐라고요?둘은 아침 5시부터 7시까지 훈련한다. 훈련이 끝나면 아침으로 단백질 파우더와 콘 프레이크를 먹는다.아놀드는 '마운트 올림푸스'라 불리는 산에 자리잡은 레그의 집에 머물고 있다. 레그에게는 헤라클레스라는 개가 한 마리 있다. 아놀드는 혼잣말로 '완전히 미친 짓'이라 중얼거린다. 하지만 지금 아놀드가 어디에 누구와 있는가? 레그 파크의 영화를 보며 꿈꾸고 있는 게 아니다.
동경하던 우상과 실제 한 공간에서 훈련하고 있다. 영화가 아니라 현실이다. 아직은 제2의 레그파크가 아닐지라도 어쨌든 레그 파크와 함께 훈련하고 있지 않는가! 아놀드가 미스터 유니버스 타이틀을 얻었을 무렵 레그와 아놀드는 서로 아는 사이가 됐고레그는 아놀드를 남아프리카공화국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함께 훈련했다. 아놀드는 모든 게 꿈만 같았다. 마침내 자신의 우상을 만나게 됐을 뿐 아니라 훈련도 같이하고 잡지에서는 절대 얻을 수 없는 것까지 배우고 있다. 매일 아침 5시~7시 사이 둘은 함께 훈련한다.아놀드는 레그가 가르쳐주는 모든 것을 스폰지처럼 흡수했다.아놀드는 "나는 마치 헐떡거리는 강아지 같았다. 선생님이 내게 건네는 모든 얘기에 귀를 기울였다. 레그와 훈련하면서 훈련 시기에 대한 내 생각이 확실히 달라졌다. 이전에는 9, 10시가 될 때까지 우리 몸은 완전히 깨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레그와 함께 훈련하면서부터는 아침 6시에 카프 레이즈 450㎏을 했다. 아침 5시 30분에 스쿼트 225㎏을 했다. 나 같은 경험을 한 사람이 또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내말인즉슨, 오스트리아 시골촌놈이 어느날부턴가 영화 속에서 처음 봤던 어린 시절 우상과 함께 살며 훈련한다."고 말한다."뮌헨으로 돌아와서는 5~7시가 아니라 7~9시에 훈련을 했다. 이른 아침에 1차 훈련을 했다. 사실 하루 3번씩 훈련했다. 아침, 점심, 저녁에 한 번씩. 경험은 사고방식을 바꾸는 법이다."

장면 Ⅵ

1968년 9월. 마침내 그토록 꿈에 그리던 미국에 온 아놀드. 생애 처음으로 영화, 책, 잡지에서나 보던 것들을 보고 있다. 6차선 고속도로, 나선형으로 꼬여있는 콘크리트 고가도로. 전에 없던 에너지가 느껴진다. 나중에 아놀드가 '쿠바인의 향취'라 표현했던 그 에너지. 어딜 가나 라틴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놀드의 고향 오스트리아는 지금 추운 겨울이다. 하지만 여기 마이애미는 덥고 습하다. 자신을 둘러싼 모든 새로운 것들에 '여기가 바로 별천지구나'라는 생각이 든다.21살 9월, 아놀드는 두번째 NABBA 미스터 유니버스 타이틀을 거머쥔다. 곧 조 웨이더의 부름을 받아 1주일 뒤 미국 마이애미에서 열리는 IFBB 미스터 유니버스 대회에 참가하게 된다. 조는 아놀드에게 캘리포니아로 옮겨와 훈련하는 것에 대해 생각해보자고 제안했다.아놀드는 자신에 차서 대회로 향했다. 미국 관중들은 처음으로 아놀드를 봤고 고작 21살짜리 거구의 근육크기에 아연실색했다. 하지만 아놀드는 미국 최고 보디빌더 중 하나인 프랭크 제인에게서 양보다는 질'이라는 또 다른교훈을 얻었다. 아놀드는 제인보다 12.5㎏나 더 나갔지만 '근선도'면에서는 미국최고의 세세한 조각 몸매에게 당할 수가 없었다. 아놀드는 장신부문에서는 1위를 차지했지만 종합우승은 제인에게 내주고 말았다.조 웨이더의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조는 강한 오스트리아 억양을 지닌 젊은 아놀드에 완전히 매료돼있었다. 조와 아놀드는 곧바로 계약을 맺었다.아놀드는1년을 미국에서 훈련 할 것이고 조가출간하는 잡지에 훈련노하우를 공개할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뉴욕에서 열리는 미스터 유니버스에도 참가할 것이다. 아놀드는 남부 캘리포니아로 옮겨 즉각 훈련을 재개했다. 이번에는 단순히 '크기'만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근선도와 근육의 질에 더 우선권을 두었다.체중을 112.5㎏에서 103.5㎏으로 줄였다.아놀드와 조는 다시 계약을 체결했다. 한 때 아놀드가 레그 파크의 지식을 스폰지처럼 흡수했던 것처럼 이제 조가 미국에서의 아놀드의새로운 삶의 모든 세세한 부분까지 알고 싶어졌다.한 번은 1969년 이었다. 조는 아놀드를 시카고로 보내당시 미스터 올림피아 세르지오 올리바와 함께 훈련하도록 했다(그해 말 둘은 함께 무대에 섰다).둘이 보내는 시간 하나하나가 궁금했던 조는 모든 걸 이야기로 기록했다. 조는 매일 밤 전화로 "오늘은 뭘 했나, 세르지오와 함께 무슨 훈련을 했는가, 세르지오가 뭐라고 말하던가 "세르지오는 단백질 음료를 얼마나 마시던가?" 등등을 물었다.
 
아놀드 연대기

1969년     
멕스코에서 열린 미스터 인터내셔널 우승
조 웨이더가 창간한 잡지 '머슬빌더'에 기고 시작
콜럼부와 미국에서 함께 살기 시작 9월 13일
뉴욕에서 열린 IFBB 미스터 유니버스 우승, 같은 날 밤 미스터 올림피아에서 세르지오에게 패배
9월 20일
런던에서 열린 NABBA 미스터 유니버스 프로 대회 우승

9월 28일
독일에서 열린 IFBB 미스터 유럽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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